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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하룻 밤의 가출

by 정안나 2022. 1. 20.

하룻 밤의 가출

올 봄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어요. 난 언니와 한 방을 쓰게 되었지요. 평소 게으른 언니 탓에 내 할 일이 더 늘어나게 되었답니다. 학교 갔다오면 책상 위에 널부러진 책이며 학용품 정리에, 바닥이며 침대에 던져놓은 옷가지를 옷걸이에 거느라 바빴지요.
“제발, 언니 물건은 알아서 치워.”
“내가 나중에 정리 할건데 네가 하는거잖아. 누가 도와 달래?”
언니의 대답은 항상 이랬어요.
“엄마, 나 언니랑 한 방 쓰기 싫어”
“방이 없는데 할 수 없잖아. 네가 좀 참아”
엄마의 대답도 항상 이랬지요.

‘오늘은 절대 안 치워줄거야’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항상 다짐하지만, 막상 방을 보면 한숨이 푹푹 나오고 내 손은 물건을 치우고 있어요.

어느날은 바닥에 널부러진 책에 밟혀 넘어질 뻔도 했어요. 또 안 쓰는 물건인 줄 알고 버려서 되려 혼나기도 했지요.

오늘은 미운 마음이 더 커져 책을 팍팍 찢고 싶었어요.
‘에잇, 얄미워.’
언니가 아끼는 책을 컴퓨터 뒤쪽으로 숨겨버렸어요.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티비를 보고 있을 때, 언니가 거실로 후다닥 뛰어나왔어요.
“야, 내 수학 책 못 봤어?”
“몰라”
난 티비만 뚫어져라 봤어요.
“분명히 아침에 책상 위에 올려놓았어. 오늘 우리 방에 들어 간 사람 너밖에 없잖아”
언니는 발을 쿵쿵 거리며 손까지 떨었지요.
“모른다고 했잖아. 물건 제대로 안 둔 사람이 누군데 누구를 의심해?”
“의심되는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까 그렇지”
“몰라, 귀찮아”
난 끝까지 티비만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 뒤통수가 흔들렸어요.
“아야, 왜 때려”
“네가 맞을 짓을 했잖아”
“내가 제일 만만하지?”
“그래”
언니는 또 내 뒤통수를 툭 쳤어요.
“왜 자꾸 때려”
난 벌떡 일어나 손으로 언니를 밀쳤어요.
“쿵”
언니는 거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엄마, 희진이가 나 밀었어”
엄마가 주방에서 뛰어나오셨어요.
언니는 엄마를 보자 발을 휘저으며 서럽게 울었어요.
“너는 말로 하지 왜 밀어?”
엄마는 나만 꾸중하셨어요.
언니는 궁지에 몰리면 항상 이런 식이라 난 변명하기도 싫었어요. 해봐야 소용도 없지요.

'우리 집에 내 편은 없어.’
난 방에 들어와 누웠지만 잠도 오지 않았어요.

난 집을 나갈 결심을 했어요. 모두 잠든 사이 살금살금 현관문을 나섰지요.
대문을 나서, 고개를 왼쪽, 오른쪽 돌려보았어요.
어스름 달빛만이 외롭게 비추고 있는 거리를 한 발짝도 나설 용기가 없었어요. 하지만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긴 더더욱 싫었지요.

일단 까치발을 해서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어두워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밤하늘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구름 사이에서 숨바꼭질 하는 달, 그 주위를 빛내는 별들, 느리지만 쉼없이 흘러가는 구름, 하늘은 모두 잠든 사이에도 바쁘게 움직였어요.
‘다시 집에 들어갈까?’
조금 무섭고 추웠지만 참기로 했어요.
추위를 피해 평상 위에 깔린 돗자리를 평상 아래에 놓고 누워 보았어요. 나름 포근했지요.
‘집에 들어갈까?’
‘아니야, 지금 가면 내가 지는거야’
갈까말까 고민하다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어요.

찬기운과 눈부심에 눈을 떠보니 벌써 아침 햇살이 떠오르고 있었어요.
‘가족들이 모두 내 걱정으로 잠을 못 잤겠지?’
기대를 잔뜩 하고 현관문을 살짜기 열었어요.
“아침부터 어디 갔다 오니?”
주방으로 들어가시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어요.
“운동”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와버렸어요.
“부지런하네”
엄마는 그냥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셨어요.
“아이고, 일찍 일어난 걸 보니, 할미 땜에 언니랑 방 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나보네”
거실에 나오신 할머니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아니예요”
할머니께 괜시리 죄송했어요.
할머니는 용돈 하라시며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 주셨지요.
순간, 얼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고 있었어요.

방에 들어가니 언니는 쿨쿨 자고 있었어요.
‘바보, 밤새 내가 없어도 모르냐?’
난 발쪽으로 가 있는 이불을 당겨 몸을 덮어줬어요.
그래도 언니는 세상 모르고 잠을 잤어요.
‘다음엔 꼭 며칠동안 집 나가버릴거야’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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