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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엄마, 코피 나요

by 정안나 2022. 1. 20.

엄마, 코피 나요.
현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렸어요.
휴지로 코를 막고 엄마를 기다리고 서 있어요.
“현아, 왜 그래?”
엄마는 휴지에 제법 묻은 피를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휴지를 뗀 코에서 피가 물처럼 주루룩 흘러내려요.
엄마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어요.
“버스에서 갑자기 코피가 나더니 계속 나.”
현이의 목소리도 파르르 떨렸어요.
“빨리 병원 가자"
엄마는 현이 손을 낚아채 듯 꽉잡고, 집앞 이비인후과로 쌩 달려갔어요.
“현이 엄마, 어디 가?”
엄마는 옆집 할머니가 불러도 몰랐지요.

그런데 병원 건물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멈춰 내려올 줄을 모르고 있어요.
“계단으로 올라가자.”
“다리 아픈데..”
엄마는 현이를 등에 업고 계단을 뛰어 올랐어요.
현이는 약한 엄마가 강철 엄마로 변해 신기했지요.
“선생님, 왜 이럴까요? 큰 병은 아니겠지요? 피가 멈추지 않으면 어쩌죠?”
평소 말수 적은 엄마가 수다쟁이로 변신했어요.
“너무 걱정마세요.”
선생님은 엄마 얼굴 한 번, 현이 얼굴 한 번 쳐다보며 빙그레 웃으셨어요.
“너, 코를 얼마나 후빈거니?”
선생님은 현이 코 안를 찬찬히 보신 후,
또 한 번 웃으셨어요.
“버스에서 한 번요.”
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코 너무 파면 피가 계속 나와요"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셨어요.
“코를 심하게 파서 미세혈관이 터져 일시적으로 피가 났네요.”
“그런가요?”
엄마 얼굴이 편안해지면서도 붉어졌어요.
“호들갑 떨어 부끄럽네요.”
“아닙니다. 당황하실만 했지요.”
엄마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내 손을 잡고 병원을 급히 나왔어요.
“너때문에 창피하네. 담부턴 코 심하게 파지 마.”
“네”
현이는 부끄러워 한쪽 눈을 감았어요.

몇달 후, 여름 휴가에 현이네 가족은 해외 여행을 갔어요.
비행기에서 하늘을 나는 기분에 들떠 잠도 오지 않았어요.
기내식도 맛있게 먹고, 개인 모니터로 만화영화도 실컷 봤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보니 엉덩이가 아플 때였어요.
“엄마, 코피 나,”
현이의 코에서 흐른 피가 옷에 똑똑 떨어졌어요.
“어머,이를 어째?”
엄마는 휴지를 구하기 위해 스튜디어스를 불렀어요.
외국인 스튜디어스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휴지를 한 묶음 갖다 줬어요.
“아유 오케이? 아유 오케이?
스튜디어스는 화장실까지 따라 와, 걱정해 줬어요.
엄마는 상냥한 웃음으로 안심시켜 줬지만, 스튜디어스의 눈은 불안해 보였지요.
“또 코 팠지?”
“응”
현이는 한 쪽 눈을 찡긋거렸어요.
“어유, 내가 못 살아.”
엄마,아빠는 피식 웃기만 하셨어요.

“아이는 괜찮나요?”
조금 후, 우리 나라 스튜디어스가 왔어요.
엄마는 사실대로 말은 못 하고, 웃으며 대답했어요.
스튜디어스 분이 기압 차이로 코피가 날 때는 위험해 질 수 있다고 하셨어요.
“아이 엠 오케이”
외국인 스튜디어스가 선물꾸러미를 갖다 주셔서,
난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실력을 맘껏 뽐냈어요.
“아이쿠”
엄마는 내 볼을 살짝 흔들었어요.
“히”
현이는 앞니를 활짝 드러내며 웃었지요.
코피 때문에 모두를 놀래켜 드려 죄송하긴 했지만, 선물을 받아서 현이 입꼬리는 계속 실룰실룩 올라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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