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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버섯 꽃이 활짝 피었어요...

by 정안나 2022. 1. 20.

나는 버섯이 싫어요.
모양도 향도 맛도 모두 싫어요.
그런데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에, 유치원 급식에 버섯은 꼭꼭 숨어있어요.
식사할 때마다 버섯을 찾느라 눈과 손이 바빠져요.

"겁먹지 말고 그냥 한 번 먹어 봐."
"먹기 싫어."

난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어요.

"다 내 탓이야. 크면 먹는다 싶어 억지로 안 먹였더니..."

엄마가 속상해 하셔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아요.
아니 바뀔 수 없어요. 무조건 싫은 걸 어떡해요.

"이거 먹으면 미미 인형 사줄게."

아빠의 간절한 눈빛에 약간 마음이 흔들렸지요.
미미 인형이 갖고 싶기도 해서 숨을 크게 쉬고 먹어 보기로 했어요.
버섯 향도 싫어 코를 틀어막고, 입 속에 넣어 한 번만 씹고 삼켰어요.
난 분명히 삼켰는데 버섯은 "웩"하는 소리와 함께 입 밖으로 튕겨져 나왔어요.

"먹지 마!"

엄마의 목소리에 매운 고추 향이 났어요.

"나 혼자 많이 먹고 젊어져야겠다. 현이 삼촌이란 소리 듣겠네."

아빠는 버섯을 한 입 가득 넣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껌 씹듯 가볍고 맛나게 먹었어요.
아빠의 놀림에도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너와 난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

나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버섯을 먹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큰일이에요.
요즘 들어 유치원 급식에 버섯볶음이 자주 나와요.
오늘도 내 입 크기만 한 버섯볶음이 나왔어요.
보기만 해도 한 숨이 나왔어요.

"선생님, 버섯 안 먹어도 돼요?"
"안돼요. 다 먹은 사람은 식판 검사받으러 나오세요."

난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어요.

"먹기 싫으면 휴지통에 버려."

먹성 좋은 영민이가 배시시 웃었어요.

"전에 처럼 음식, 휴지통에 버리면 벌줄 거예요."

선생님이 언제 오셨는지 내 옆에 서 있었어요.
난 밥  한 술 뜨고 한숨 한 번 쉬고, 두 술 뜨고 한숨 두 번 쉬었어요.

"현이 아직 다 안 먹었니?"

주위를 보니 나만 식판 검사를 안 받았는 걸요.

'어쩌지 어쩌지'

식판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버섯이 얄미웠어요.

'에이 모르겠다.'

난 버섯을 식판 뚜껑에 올려놓고 식판만 들고  검사받으러 나갔어요.

"그래, 이렇게 먹으면 되는 거야. 잘했어."

선생님의 칭찬이 슬플 때도 있네요.
내 자리로 와, 누가 볼까 봐 얼른 식판 뚜껑을 닫았어요.
잠시라도 버섯을 안 보니 마음은 편해졌어요.

집으로 가는 하원 버스에서 또다시 걱정이 시작되었지요.
하지만 아무런 답도 못 내고 버스에서 내려야 했어요.

"오늘도 재미있었어?"

엄마는 나를 안아주며 가방을 받아주셨어요.

"엄마, 식판 뚜껑 절대 열면 안 돼."

난 엄마 얼굴도 못 쳐다보고 앞만 보고 걸었어요.

"왜?"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왜?"
"그런게 있다니깐."

딱딱한 내 목소리에 엄마도 더 이상 묻지 않으셨지요.

"나 오늘 좀 바빠, 아빠 오실 때까지 내 방문 열지 마."

집에 오자마자 명령조로 말하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와 버렸어요.
엄마는 내 행동을 귀엽게 봐주셨어요.
난 방문에 귀를 갖다 대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았어요.
조용하자 침대에 누워 자는 척도 해보고, 그림도 그렸지요.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어요.
유치원 친구들과 버섯 공원에 소풍을 왔어요.

"와, 내가 좋아하는 버섯이다."

난 버섯이 보이는 대로 뜯어 소처럼 우걱우걱 씹어먹었어요.
배가 너무 불러 돗자리에 누워 낮잠을 잤어요.
잠결에 배가 꿀렁꿀렁, 얼굴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 눈을 번쩍 떴지요.
공원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고 공룡 소리를 냈어요.
내 얼굴 전체에 버섯이 꽃처럼 활짝 피어 올라 있었어요.

"엄마, 엄마."
"왜 그래?"

눈을 떠보니 엄마가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어요.

"거울 거울 거울"

엄마가 급하게 건네준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고서야, 난 활짝 웃을 수 있었어요.
뽀얀 내 얼굴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지요.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거야?"

엄마 눈엔 아직도 걱정이 담겨 있었어요.

"엄마, 버섯 안 먹으면 나 미워할 거야?"
"무슨 소리야? 잠이 덜 깻나보네."

엄마는 현이 얼굴을 관찰하며 헛웃음을 지으셨지요.

"버섯이랑 조금 친해져 볼게."
"그래, 천천히 친해져 봐"

엄마는 현이 등을 토닥토닥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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