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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내 이름이 뭐게요?

by 정안나 2022. 6. 5.


우리 엄마는 '걱정 대마왕'이랍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한 후로 걱정이 더 늘었지 뭐예요.
"찻길 건널 때 오른쪽, 왼쪽, 앞으로 차가 한 대도 없을 때 건너라. 운동장에서 펄쩍펄쩍 뛰지 마라.
계단 오르내릴 때 다리를 쫙쫙 펴라. 친구 일에 끼어 들어 선생님 눈밖에 나지 마라. "
매일 똑같은 잔소리를 지겹도록 한답니다.
특히, 낯선 사람 조심 하란 소리를 내 귀에 새겨질 정도로 많이 하셨지요.
"네 이름, 전화 번호, 주소, 엄마 아빠 전화 번호 절대 가르쳐 주면 안 돼"
"네,네, 네"
난 듣기 싫어 급히 집을 나섰지요.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지우개를 주길래 태권도 사범 님께 내 이름과 전화 번호를 적어 주곤,
엄마의 잔소리를 몇 날 며칠 들어야 했지요.
"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정보도 적어 주면 안 돼"
엄마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어요.
난 엄마가 내뿜는 불에 데일 생각만으로도 절대 안 가르쳐 주리라 다짐 또 다짐했어요.

하지만 방과 후 교문 앞에는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어른 늑대들이 많은 걸요.
특히 새 학기다 보니 여러 학원에서 홍보 나와 사탕이며, 과자, 장난감으로 우리를 유혹했지요.
" 학생, 참 착하게 생겼네"
"학생, 참 똘망하게 생겼네"
"여기 이름이랑 전화 번호만 적어주면 이거 줄게"
고개 숙이고 가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분들은 피해 갈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잖아요.
칭찬과 선물에 1초 혹 해서 내 손이 아주머니가 건넨 종이로 갔지 뭐에요, 나도 모르게.
그러다 마귀 할멈으로 변한 엄마 얼굴이 종이 위에 나타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갑자기 종이를 내팽겨치고 앞으로 앞으로 용을 쓰며 달려 나갔답니다.
우리 아파트 입구까지 와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혼자 뿌듯해 했어요.
" 엄마, 나 오늘 어떤 분이 종이에 이름 적으라고 하셨는데 뿌리치고 왔어. 잘 했지?"
"그래, 넘 잘 했네"
엄마는 냉장고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스킨 라빈스 허니봉봉 아이스크림'을 주셨어요.
지금껏 먹어 본 아이스크림 중에 최고로 맛있었지요.
'앞으로도 절대 안 적어 줘야지!'
나의 각오는 대단했답니다.

다음 날 방과 후에도 여전히 홍보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학생,학생!"
귀에 환청이 들리나 싶을 정도로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난 눈길 한 번 안 줬답니다.
그런데 곁눈으로 내가 좋아하는 딱지가 책상 가득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어요.
오늘 친구랑 한 내기 딱지에서 반 이상 잃어 속상했는데, 바로 그 딱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정말 정말 나도 모르게 내 몸과 눈은 그곳으로 가고 있었지요.
"학생, ㅇㅇ 공부방에서 홍보 나왔는데, 여기에 이름이랑 전화 번호만 적어주면 이 딱지 30개 줄게"
순간, 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니요, 필요 없어요"
"전화 안 할게. 적어 주기만 해도 이거 줄게"
그 분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 친 게 큰 문제였지요.
다른 분들은 날 잡아 먹으려는 늑대 눈빛이었다면, 이 분은 나보다 더 연약한 어린 양의 눈빛이었어요.
그리고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감길 듯한 눈빛이기도 했지요.
내가 꼬옥 도와줘야만 할 것 같았어요.
그 분의 간절한 눈빛에 내 마음은 계속 흔들렸어요.
'그냥 적어 드릴까?'
'아니야, 엄마의 잔소리는 어쩔거야'
'저 분은 넘 힘들어 도와 주고 싶어'
내 머릿 속에 생각이 많아 어질어질 해졌어요.
"학생, 전화 절대 안 할게"
"진짜요?"
"그럼"
이상하게 그 분의 눈빛은 나보다 더 정직해 보였어요.
'그래, 적어만 주고 딱지 받아 가지 뭐'
'저 정도 딱지 사려면 돈이 얼만데'
'엄마한텐 비밀로 하지 뭐'
내 손은 이미 종이 위에 가 있었지 뭐예요.
내 이름, 전화 번호, 주소까지 가볍게 적어 드려 버렸답니다.
그 분은 좀전과 다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손에 약속한 딱지를 가득 쥐어 주셨어요.
난 왠지 착한 일을 했다는 착각에 빠졌지요.
콧노래까지 나왔는걸요.
착한 일을 했을 때 느껴지는 찌릿찌릿함이 온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답니다.
'이 딱지로 낼 꼭 이겨야지!'
난 엄마에게 딱지를 절대 들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가방 깊숙히 꾹꾹 눌러 숨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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