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화

양참배 태민이

by 정안나 2022. 2. 22.



태민이 별명은 '양참배' 랍니다.
양보 잘 하고, 참을성 많고, 배려심 깊다며 친구들이 지어줬지요.
특히,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답니다.
"난 태민이랑 사귀고 싶어. 내 이상형이야"
반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수민이가 선전포고를 했어요.
"태민인 내 꺼야. 난 학기 초부터 좋아했는걸"
눈이 큰 해주도 질세라 목청을 높혔지요.
'내가 무슨 물건인가? 그리고 난 너희들한테 전혀 관심없거든'
태민이는 피식 웃고 말았어요.
"여자 애들한테 인기 많아 좋겠네"
샘쟁이 민수가 태민이 어깨를 툭 쳤어요.
"난 관심없어!"
"그럼 누구한테 관심 있는데?"
민수와 눈이 마주치자, 내 마음 속 짝사랑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어요.
"아무도 없어"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있는데"
태민이는 자리를 피해 버렸어요.

사실 태민이의 짝사랑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아이를 처음 본 순간, 태민이는 눈 앞에 천사가 나타난 줄 알고 깜짝 놀랐지요.
바람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파아란 원피스를 입고, 흰분홍빛 벚꽃같은 얼굴로 수줍게 웃던 그 아이.
그렇게 그 아이는 태민이 마음 속에 들어 와 나갈 줄 몰랐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태민이는 그 아이 옆에만 가면 잔뜩 화난 얼굴로 변했어요.
같은 모둠이 되었을 때도, 그 아이한테만 말을 안 걸어 다른 친구들이 눈치를 볼 정도였어요.
태민이도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자신이 밉고 싫어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겼어요.
말없이 울고 있는 그 아이의 눈물이 태민이의 가슴을 타고 따갑게 흘러내렸지요.

태민이는 자기도 모르게 운동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지갑을 찾았어요.
수업 종이 울린지 한참이 되어도 오지 않자, 친구가 찾으러 와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놀다 온 줄 아시는 선생님께 호되게 꾸중까지 들었지만, 그 아이 지갑을 못 찾아 줘 더 마음이 아팠어요.

"너, 쟤 좋아 하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민수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얼른 고개를 돌렸어요.
"울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서 찾아주려고 한 것 뿐이거든"
"수업 종이 울린 것도 모르고 다닐 정도면 좋아 하는 거야"
"아니라고!"
태민이는 민수를 한 대 칠 기세였어요.
"아님 말고"
민수는 입을 빼죽거리며 자기 자리로 갔어요.

태민이는 방과 후, 다시 학교 운동장 여기저기를 샅샅이 살피고 다녔어요.
"찾았다"
목련나무 아래에서 빠알간 지갑을 발견 했을 때, 태민이의 몸은 방방이 위에서 뛸 때보다 더 붕붕 뛰어올랐지요.

한 걸음에 그 아이 피아노 학원까지 달려가, 우연히 주웠다며 건네 주었어요.
"고마워"
수줍게 웃는 그 아이의 눈을 넋 놓고 빤히 바라 보았지요.
태민이 온 몸이 서서히 발그레 하니 물들어 갔어요.
"빵이라도 사 주고 싶은데,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 아이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이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어요.
"괜찮아, 나도 학원 가야 해"
태민이는 인사도 못 하고 몸을 홱 돌려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 나, 시간 많은데...'
태민이는 집에 오는내내 자기 머리를 쿡쿡 쥐어박았어요.

다음 날, 태민이는 교실에서 그 아이를 여전히 쳐다보지 못 했어요.
'바보, 바보, 바보'
태민이는 책상 서랍 속에 손을 넣어 바닥만 쿵쿵 쳤지요.
"오늘은 짝 바꾸는 날이죠? 자기가 원하는 친구끼리 앉도록 해요"
선생님 말씀에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 심호흡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와, 신난다!"
친구들은 마음 맞는 친구끼리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손까지 흔들고 난리법석이었지요.
"나랑 짝 할래?"
민수는 잽싸게 그 아이 앞으로 가더니 박력있게 말을 걸었어요.
'안 돼, 안 돼!'
태민이는 더위 먹은 것마냥 엉덩이만 들썩들썩거리며 발까지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어요.
'제발 싫다고 해 줘!'
태민이는 마음 속으로 간절히 외쳤어요.
만약 그 아이가 허락하면, 태민이는 교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지도 몰라요.
"아니, 난 태민이랑 짝 할건데"
순간, 태민이 귀에 그 아이의 목소리가 나풀나풀 나비가 되어 내려 와 앉았어요.
태민이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 아이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지요.
그 아이도 태민이를 향해, 그 벚꽃같은 분홍빛 하얀 웃음을 보내 줬어요.

"태민이는 어떡할거야?"
선생님 물음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 저도 좋아요"
태민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겨우 대답했어요.

"안녕!"
태민이가 고개를 든 순간, 그 꽃같은 아이는 옆에 앉아 미소를 흩날리고 있었지요.
"안녕!"
태민이도 그 아이의 미소에 용기 내 수줍게 웃어 주었답니다.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기기 대장  (0) 2022.05.15
우리 동네 뚱보 아줌마  (0) 2022.03.04
학교에 간 공주  (0) 2022.02.19
엉뚱발랄 태민이  (1) 2022.02.10
백숙이 될 뻔한 삐악이  (0) 202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