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화

우기기 대장

by 정안나 2022. 5. 15.


오늘따라 심심했어요.
베란다 밖 놀이터를 물끄러미 보다 외롭게 서 있는 그네에 눈길이 갔어요.
"너도 심심해 보이네. 너나 타러 나갈게"
난 곧장 신발을 신고 놀이터로 나갔어요.

그네에 올라 타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하늘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지요.
내 몸이 하늘과 가까워지는 기분은 언제 느껴도 짜릿짜릿했어요.
신나게 타고 나니, 미끄럼틀이 타고 싶어졌어요.
두 다리를 쭉 뻗고 두 팔을 수평으로 벌린 채 , 미끄럼틀 아래로 엉덩이를 살살 흔들면 몸이 순식간에
미끌미끌 아래로 내려와요.
네 번정도 타고 나니 재미가 없어졌어요.
시소는 짝이 없어서 못 타고 구름 사다리는 겁이 나서 못 타겠어요.

난 아무나 보이면 놀 마음으로 그네에 앉아 놀이터 입구를 빤히 보고 있었지요.
몇분이 흘렀을까, 내 또래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물고 내 앞으로 쫄래쫄래 걸어왔어요.
"안녕!"
"안녕!"
우리는 서로에게 홀린 듯 오래 된 친구처럼 인사했어요.
"난 어제 저 동으로 이사 왔어"
그 아이는 놀이터 앞 동을 가리켰어요.
"난 작년에 이 동으로 이사 왔어"
나도 편하게 우리 동을 가리켰지요.
"너 몇살이야?"
"넌?"
난 그 아이 눈치만 살폈어요.
"난 7살이야. 유치원은 어디 갈지 아직 못 정했어"
"나도 7살이야. 유치원은 한샘 유치원 다녀"
난 언니라고 부르기 귀찮아, 한 살 더 부풀려 말해 버렸지 뭐예요.
"우리 친구네, 친하게 지내자"
그 아이는 내 손까지 꼬옥 잡아줬어요.
"그래"
나도 고개를 끄덕여주었지요.
우리는 시소도 타고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며 신나게 놀았어요.
"우리 내일도 놀자"
우리는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나서야 헤어졌어요.

난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놀이터에 나갔어요.
그런데 그 아인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요.
조금 슬펐지만, 내 나이를 들키지 않아 다행이기도 했어요.

며칠 뒤 , 유치원에서 쉬는 시간에 도서관에 갔어요.
보고 싶었던 책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쳤어요.
"안녕!"
"어~ 아안녕!"
난 순간 몸이 움찔해 졌어요.
" 나도 이 유치원 다니게 됐어. 난 햇님반이야, 넌?"
"어~ 난~난~"
갑자기 7세 반 이름을 기억해 내느라 식은땀이 났어요.
"달님반이야?"
"어~달님반"
난 그 아이 눈을 마주칠 수 없었어요.
"우리 옆반이네. "
난 머릿 속이 낙서장처럼 변했고 속도 메쓱거렸어요. 온 몸에 꼬물꼬물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어요.
"교실에 같이 가자."
"난 이 책 다 보고 갈게"
난 갑자기 책벌레가 되었지요.
"그래, 쉬는 시간에 너희 반에 놀러 갈게"
난 책 속에 빠져 아무 것도 안 들리는 연기를 했어요.

한참만에 고개를 들어보니, 도서실엔 나만 있었어요.
"에이, 모르겠다. 7세 반은 1층, 우리는 2층이라 볼 일 없겠지?"
난 우리 할머니 말씀처럼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나 봐요.
금새 걱정거리를 잊어버렸지 뭐예요.

다행히 그 언니는 등하원 버스에 타지 않았어요.
"계속 안 타겠지?"
난 책상 밑에 붙인 껌이 들키지 않을거라 믿듯이 딱 믿었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그날도 친구들이랑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하하.호호 웃고 서 있었어요.
"안녕"
뒤를 돌아보니 그 언니가 활짝 웃고 있었어요.
"어~안녕!"
내 표정이 굳어졌어요.
" 내가 아침에 계속 늦잠 자서 엄마가 데려다 주시고,오후엔 종일반이라 아빠가 데리러 오셨어"
언니는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술술 잘도 말했지요.
난 떡을 입에 한가득 물고 있는 것마냥 가만히 있었어요.

버스에 올라 타서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동생한테 숨겨 둔 과자 들킬 까 조마조마 할때보다 더 심장이 콩콩 거렸어요.

버스가 유치원에 도착하자, 난 일부러 젤 나중에 내렸어요.
"같이 가자"
언니는 버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뭐예요.

난 할 수 없이 언니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갔지만, 1층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었어요.
"안 가고 뭐해?"
"어~ 갑자기 다리가 아파서."
난 멀쩡한 다리를 조물락거리며 서 있었어요.
" 은솔이 뭐해? 우리 반은 2층이잖아"
같은 반 영아가 큰 소리로 날 불렀어요.
"2층?"
언니는 영아를 빤히 보았어요.
"우린 6세 별님 반이잖아"
난 영아 입을 손으로 막고 싶은 걸 꾹 참았어요.
"뭐? 6세? "
갑자기 언니의 눈에서 찬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걸 느꼈어요.
순간 내 몸이 차가워 졌지요.
난 한 번씩 엄마께 바득바득 대들 때가 있지요.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구요.
난 그 때처럼, 어깨 쫙 펴고 고개 빳빳이 들고
"한 살 차이는 친구나 마찬가지거든"
당당하게 말했지요.
"아니거든, 한 살 차이라도 언니는 언니지!"
언니도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뚫어져라 보았어요.
"아니, 친구가 될 수도 있거든!"
"너 ,  우기기 대장이구나!"
언니는 내 귀에 대고 꽥 소리를 질렀어요.
난 '흥' 거리며 이층 계단을 총총 올라갔지요.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이름이 뭐게요?  (0) 2022.06.05
우리 동네 뚱보 아줌마  (0) 2022.03.04
양참배 태민이  (0) 2022.02.22
학교에 간 공주  (0) 2022.02.19
엉뚱발랄 태민이  (1) 202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