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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백숙이 될 뻔한 삐악이

by 정안나 2022. 1. 31.

며칠 전부터 민주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문 앞에 병아리 장수 할아버지가 하교 시간에 맞춰 와 계셨어요.
아이들은 앙증맞은 병아리들에 반해 우르르 몰려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고 있었지요.
용돈이 있는 친구들은 병아리를 사들고 보물단지처럼 품에 안고 집으로 갔어요.
민주는 그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 볼 뿐이었지요.

오늘 학용품 사고 남은 돈이 있어, 병아리를 살까말까 망설이고 서 있었어요.
"내가 엄마한테 잘 말씀드릴게. "
민주는 오빠의 말에 용기 내서 병아리 한 마리를 사버렸어요.

집에 오자마자 슈퍼에서 구해 온 과자 상자에 병아리를 넣고, 방에 꿀단지 모시듯 놔뒀어요.
"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는 오래 못 살던데."
작은언니는 동생들 놀리기가 취미였지요.
민주는 그 말에 아랑곳 않고 지극정성으로 병아리를 돌봤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병아리만 쳐다보고 있었지요.
추울까 이불 덮어주고, 목마를까 물 주고, 배 고플까 사료 주다 보면 저녁이 되었어요.
" 닭도 못 될건데 뭐하러 정성을 쏟아?"
언니는 코까지 찡긋거리며 놀렸어요.
" 아니야, 우리 삐악인 꼭 멋진 닭이 될거라구!"
민주는 언니를 향해 눈을 부릅떴어요.
"흥, 얼마나 잘 크나 두고 보자"
"그래, 두고 봐."
민주는 두 손을 허리에 두고 가슴을 쫙 폈어요.

그날 이후, 민주는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병아리를 보고 또 보았어요.
'하느님, 우리 삐악이 잘 크게 해주세요.'
병아리를 쓰다듬어주며 기도도 열심히 했지요.

"우리 민주 정성으로 삐악이가 많이 컸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할머니께서 삐악이 물통에 물을 갈아주고 계셨어요.
그러고보니 삐악이가 훌쩍 커 있었지요. 만약 민주에게 날개가 있다면 하늘을 날듯 기뻤지요.
" 이제 삐악이를 마당에서 길러야 겠어."
민주는 아빠 말씀에 이별 하듯 눈물이 글썽거려졌어요.
" 닭은 닭우리에서 살아야 더 잘 큰단다."
할머니는 민주의 손을 살포시 만져주셨어요.
' 그래, 멋진 닭이 되어 새벽에 우렁차게 홰를 치게 해야지!"

민주는 마당으로 집을 옮긴 삐악이를 더 열심히 돌봐 주고, 열심히 기도했어요.

민주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요.
이제 삐악이는 멋진 닭이 되었어요. 예쁜 볏도 생기고 다리도 길어졌지요.
" 다른 집 병아리는 닭 되기 전에 죽던데."
작은언니는 닭벼슬을 툭 쳤어요.
' 부러우면 부럽다 하면 되지. .'
민주의 어깨는 사과 두 개를 달아놓은 듯 올라갔어요.

드디어 멋진 닭은 '꼬끼오, 꼬끼오' 홰를 치며 새벽을 깨웠어요.
그 덕에 민주네 가족의 아침도 더 활기차 졌고 부지런해 졌지요.
" 저 닭이 그렇게 좋아?"
"네"
잠옷 바람으로 마당에 나갔다 오는 민주를 보고 할머니께서 싱긋 웃어주셨어요.

" 집 잘 보고 있어"
민주는 닭을 가방 속에 넣고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어요.
'이제부터 맨드라미라고 불러야지'

그런데 민주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 했어요.
민주의 사랑스런 맨드라미는 부지런해도 너무 부지런해 밤낮으로 울어댔어요.
할머니 말씀이 하루에 이백 번은 더 우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민주도 아무리 사랑스런 닭이지만, 언제부터인지 울음 소리를 듣기 힘이 들었지요.
심지어 고요한 밤에도 쉴새없이 울어대니 식구들도 잠을 푹 못 잤어요.
" 얘, 닭한테 그만 좀 울라고 말해"
작은언니의 말에 가시가 돋쳤어요.
"난 듣기만 좋은데"
민주는 언니한테 지기 싫어 끝까지 우겼어요.

'혹시 울음이 그치지 않는 병에 걸린 걸까?"
민주는 맨드라미가 잠도 없이 울어대니 살짝 걱정이 되었지요.
"이제 도저히 못 참겠어."
" 다른 집에 줘 버려"
맨드라미를 좋아하던 식구들도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 조금만 참아 줘. 내가 잘 타일러 볼게"
민주는 식구들의 마음을 달래느라 애를 썼어요.
"맨드라미야, 밤엔 모두 자야 되잖아. 너도 힘들고. 밤엔 울지 말자"
민주는 닭벼슬을 자주 쓰다듬어 줬어요. 그럴 때마다 맨드라미는 '알았어요' 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러나 오늘 밤에도 맨드라미는' 꼬끼오, 꼬끼오, 꼬옥~꼭' 숨 넘어 갈 정도로 울어댔어요.
"내일 당장 갖다 버려야지"
작은언니는 손으로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어요.
민주는 걱정으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맨드라미는 민주 마음도 몰라주고 아침까지 울어댔어요.
"오늘 학교 갔다오면 병원 가 보자. 목 아프니까 그만 울어"
민주는 대문을 나서며 맨드라미를 보고 또 봤어요.

학교에서도 내내 맨드라미 걱정 뿐이었지요.

민주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 번도 쉬지 않고 집으로 달려 갔어요.
대문 밖까지 왁자지껄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어요.
급히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 보니, 어른들이 맨드라미를 잡느라 민주가 온 줄도 모르셨어요.
"꼬끼오~꼬끼옥~꼭~꼬꼬~옥"
맨드라미는 아빠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푸드덕 푸드덕 거렸어요.
"가만히 좀 있어!"
아빠는 더 힘주어 맨드라미 날개를 잡으셨어요.
"뭐 하시는 거예요?"
"이 녀석이 하도 울어 대서 이웃 집에서 항의가 들어 오잖니. 잡아서 닭백숙이라도 해 먹어야 겠다."
아빠의 얼굴도 벌개져 있었어요.
"안돼요.절대 안돼요."
민주는 아빠 팔을 잡고 애원했지요.
그러다 맨드라미와 눈이 마주쳤어요.
'누나, 나 좀 살려 줘'
맨드라미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했지요.
'그래, 널 꼭 지켜줄게'
갑자기 민주는 온힘을 다해 아빠 손에서 맨드라미를 재빨리 낚아챘어요.

맨드라미를 품에 안고 대문 밖으로 나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 나갔어요.
길이 보이는대로 무조건 전력질주 했어요. 이대로 멈추면 아빠에게 잡힐 게 뻔하니 절대 멈출 수 없었지요.

어느 순간, 집에서 꽤 멀리 온 듯 하더니 다리도 찌릿찌릿 아파 왔어요.
낯선 집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맨드라미와 잠시 쉬었어요.
"많이 힘들었지?"
맨드라미는 이제야 편안해 보였어요.
"우리 어두워 질 때까지 여기 있자."
민주는 갈 곳만 있으면 집에 들어가기 싫었지요.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어스름 해질녁이 되니 으슬으슬 추웠어요.
할 수 없이 걱정을 한짐 안고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지요.
" 네가 너무 우니깐 모두 힘들대. 하루에 다섯 번만 울면 안 될까?"
'알겠어요'
민주가 벼슬을 어루만져 주니 맨드라미도 고개를 끄덕여 주는 듯 했지요.

어느새 집 앞까지 왔어요.
"어디 갔었냐? 얼마나 걱정 했게"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와락 안아주셨어요.
"으앙"
할머니 품에 안기자 설움이 폭발했어요.
"꼬끼오~ 꼬꼬꼭~"
맨드라미도 덩달아 울었지요.
"괜찮아, "
할머니는 민주 등을 살살 두드려 주셨어요.

현관문을 여니 식구들이 모두 나와 반겨 주었어요.
" 걱정 많이 했잖아. 이제 닭 안 잡을테니 걱정 말고 밥 먹어"
아빠는 맨드라미를 안아 주셨어요.
"오늘만 거실에서 자게 허락해 줄게"
작은언니는 커다란 라면 상자를 방에서 꺼내 왔어요.
"고마워"
민주는 언니를 와락 끌어 안았어요.
"그대신 또 울면 쫓아 낼거야"
"잘 들었지? 밤에는 제발 울지 않기야."
민주는 맨드라미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어요.
' 알겠어요. 걱정마요.'
맨드라미가 해맑은 눈으로 민주를 빤히 보았어요.

민주는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았어요.
거실에 나가 맨드라미가 잘 자는 모습을 보고 와서야 꿈나라로 갔답니다.
꿈 속에서 맨드라미와 넓은 꽃밭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지요.

"뚝닥뚝닥"
주방에서 들리는 엄마의 칼질 소리에 눈을 떴어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어요.
다행히 맨드라미는 세상 모르고 애기처럼 자고 있었어요.
"고마워"
민주는 맨드라미 볼에 뽀뽀해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요.

"걱정 말고 갔다 와. 내가 잘 지키고 있을테니"
할머니는 , 가방을 메고 맨드라미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민주를 안심시켜 주셨지요.
"할머니만 믿을게요"
민주는 할머니와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나서야 대문을 나섰어요.

맨드라미는 그날부터 신기하게도 하루에 네 번만 울고 절대 울지 않았어요.
식구들도 맨드라미를 예뻐해 주었구요.
"아빠, 닭백숙이 먹고 싶은데 맨드라미 잡을까요?"
작은언니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농담을 했어요.
" 민주가 또 가출하면 어쩌려구, 그리고 살이 없어서 잡아도 먹을 것도 없어."
아빠는 민주를 보며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활짝 웃어 주셨어요.
"언니, 내 용돈으로 닭백숙 사줄게"
"꼬끼오,꼭꼭. 나도 사줘, 꼬옥꼭"
오빠의 윙크에 식탁 위로 웃음꽃이 빵 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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