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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의 성장일기

기억을 갉아 먹는 균

by 정안나 2022. 1. 27.

우리 옆집 할머니는 성격이 참 이상해요.
어느날은 인사하면 ' 이쁜이로구나!' 하시고, 어느날은 '너 , 누구니?' 라고 하시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는거 있죠.
또 손에 든 짐을 들어 드리면
어느날은 '고맙다, 우리 귀염둥이' 하시며 사탕도 주시는데
어느날은 '고얀 것, 왜 남의 물건 뺏어 가누?' 라시며 화를 버럭 내셨지요

"엄마, 옆집 할머니 마음 속에 천사와 악마가 함께 사나봐"
나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모든 사람은 다 그래. 그리고 연세 드시면 감정기복이 더 심해지셔"
엄마는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어요.
"감정기복이 뭐야?"
"좋았다, 싫었다 하는 왔다갔다 하는 마음이야"
"사실 나도 마음이 왔다갔다 해"
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몸이 아프면 감정기복이 더 심해지셔. 화를 내시면, 많이 아프신가보다 생각 하면 돼"
"알겠어요"
엄마가 해 주시는 설명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며칠 후, 할머니 아들이 오셔서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셨어요.
" 어쩌나?"
엄마는 슬픈 드라마 볼 때보다 더 펑펑 우셨어요.
" 왜?"
나까지 눈물이 나려고 했지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지 꽤 됐다네.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 ."
엄마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할머니 머릿 속에 기억을 갉아 먹는 균이 생겨 할머니를 괴롭히고 있었던거였지요.
'할머니, 화 내실 때마다 마음 속으로 마귀 할멈이라고 놀려서 죄송해요'
난 할머니 집 현관문을 한참 동안 멍 하니 바라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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