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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세발 자전거

by 정안나 2023. 10. 23.

나는 조그마한 세발 자전거랍니다.
수민이가 네살 생일 선물로 할아버지께 받은 귀여운 자전거지요.
수민이는 한동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와, 나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를 누비며 다녔답니다.
   "와, 자전거 멋지네."
지나가던 사람들의 칭찬에, 내 몸이 들썩들썩거렸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물웅덩이를 지나가던 내 몸이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며,수민이의 팔에 빨갛게 피멍이 들었지 뭐예요.
  그날 이후,난 자전거 보관소에서,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어요.
반짝반짝 빛나던 내 몸은 점점 흙투성이,먼지투성이가 되어갔지요.
사람들은 내 의자 위에 재활용 가방을 놓고 가버리고, 발로 한 번 툭툭 차고 가기도 했어요. 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답니다.
  "우리 애기,그건 버리는 물건이야,엄마가 새걸로 사줄게"
한 아이가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나를 만지려는  순간,엄마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지요.
  세상 부러울 것 없던 그때가 그리워 뚝뚝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꿈만 같이 수민이가 내 앞에 나타났어요.
예전처럼 나에게 앉더니,바퀴를 휘휘 저어나갔어요.
난 이러다 하늘을 날아갈 수도 있을것만 같았어요.
  "흥, 이젠 작고,더러워서 싫어"
  수민이는 입을 삐죽거리며,나를 아파트 입구에 버리고 찬 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렸어요.
  지나가던 아주머니도 나를 힐끔힐끔 보시더니,고개를 홱 돌려버리셨지요.
  그날 저녁, 오랫만에 굵은 빗방울이 쉴새없이 후두둑 떨어졌어요.
난 다시 깨끗해져서,새로운 주인을 맞을 생각에 하나도 슬프지 않았답니다. 난 차가운 빗방울이 내 몸을 때려도 꾸욱꾸욱 참고 또 참았지요.